國土巡禮●

7월 21일

milbori1999 2010. 7. 21. 21:50

"땅끝" 말맛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모든 일이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

 

통상적으로 이곳을 희망의 시작점으로 인식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고,

국토순례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3시 30분 해변공원 정자에서 일어나 해안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다행스럽게

날씨는 맑아 보인다

4시경에 동반자를 깨워 배낭을 꾸리고 전망대로 향하려니

소나기가 내린다

기나긴 장마는 끝없어 보인다

날씨 탓도 있겠으나 아직 이른 시각이라 어둠이 짙다

5시경 전망대에 당도하여 아래를 살피니 마을 가로등들이 희끄무레

어둠속에서 마을 윤곽을 나타나게 하고

비는 멈췄으나 바람이 거세다

궂은 날씨 때문에 해돋이를 보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에서는 이미 붉은 태양이 솟아 오른다

20일간 짧지 않은 여정의 작은 걸음나비로 이곳 땅끝에 발 디디고 서 있는 것 만으로

스스로는 큰 의미와 각별한 뜻을 부여해 본다

앞으로 남은 일정 무사하게 마무리하기를 빌어도 보고

가족들의 건강과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녀석은 이른 기상으로 피곤한지 비바람 속에서 공원에 마련된 벤치에 누워

해 뜨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눈을 감고 웅크리고 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일으켜 우의를 챙겨 입히고 조각탑을 향한다

산책로 숲길이 너무 아름답고 탁트인 바다가 정겹다

아쉽다면 시계가 짧은 것이지만

아스라하게 보이는 섬도 아름답고

탑을 둘러 보고 곧장 마을로 내려 가려다 날씨가 개이는 듯하여

다시 전망대로 오른다

내려갈 때 보지 못한 작품같은 푯말

전망대에 오르니 한 줄기 빛이 서린다

다행으로 여기며 감사 감사 또 감사한 마음으로 내려오니

오를 때 어둠으로 보지 못한 점점이 박혀 있는 아름다운 섬들

그사이 많이 자라 덥수룩한 수염 때문인지

여위고 초췌해 보이는 몰골

반면 내면은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충만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전망대를 뒤로하고

마을 초입에서 아침을 먹고

동에서 서쪽으로의 여로를

남에서 북으로 선회하여 새로운 순례길 나선다

15여년 전 회사 동료들과 보길도 낚시길에 하룻밤 유한 마을 송호리

구름 끼고 잔뜩 흐려 해는 보이지 않지만 날씨가 몹시 무덥고 몸이 짓무르다

해돋이를 보고자 이른 기상 때문도 있겠으나

지쳐 보이는 우리에게 쉬어 가기를 간청하며 자리를 마련 해 주는 현산면 월강리

주민들

둥근달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로고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마을 주민들이

붕어조림과 술 한 잔을 권한다

안주가 모자란다며 언제 준비 하셨는지 집에 기르는 닭 두마리를 잡아 백숙으로

내 놓으시는 안주인 고마움이 도를 넘어 송구하기 그지 없다

진정 나는 누구를 위해 다뜻한 가슴, 손길 제대로 내밀고 보여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되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잘 사는 것은

이들처럼 베푸는 이런 삶을---

스스로에게 矢心해 본다

녀석은 주민 중 한 명이 해병대 선배라며 술 잔을 주고 받고 하더니 많이 취했나 보다

오늘은 느림보의 행보다

녀석이 취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하여 오후 5시경 윤탁고택 근처의 정자에 쉬게하고

찬찬히 고택 안을 둘러 본다

고택 만큼이나 나이 들어보이는 향나무가지가 뒷간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툇마루는 없으나 이끼 긴 낮은 기단이 너무도 정겹다

식솔들의 방 앞에 디딜방아가 정겨움을 더하고

한 층 높게 올린 툇마루가 특이하다.

때(2-3년 뒤)되면 나도 이런 집 지어 여름날 대청의 들창 올려두면

해, 달, 바람과 온갖 날짐승이 마음대로 드나들고

그런 자연과 같이 하고픈 지인들과 술 한 잔나누며 살고지고

녀석은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없다

오늘은 저녁을 얻어 먹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일어나면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해야지?

라면이면 어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