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紀行文◎

마카오

milbori1999 2007. 2. 3. 13:00

심천에서 Macau로

심천 홍규대주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여행지인 마카오로 가기전 호텔에서 조찬중인 뷔페에서

안사람과 친구내외 

9시경 호텔에서 버스로 10:40분에 마카오로 향하는 여객선 터미널에 토착 

蛇口 국제여객선터미날에서 승선하기전 통관하여 우리가 타고 갈 여객선, 그 선실내에는 태반이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다.

내 앞좌석에 앉으신 사모님들은 의정부시에 사는데 같이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동료 8명이 우리와

비슷하게 여행경비를 마련하여 나선 모양이다. 십수년 전만 하여도 끼니 걱정들을 하는 생활이였는데

이렇게 짧은 시일에 나 개인은 물론 나라전반에 걸쳐 대단히 성장한 경제발전으로 우리도 이렇게 매년

국내 여행을 포함하여 해외로 나들이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며 고마움인지 모르겠다

마카오에 도착하여 현지가이드를 만나 중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일행들 

도박의 도시답게 1층은 오락실인 2층 뷔페의 내부, 분위기도 화사하면서 아늑하고 한갓지다.

종업원들이 친절하고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울산에서는 이만한 식당을 보지 못했다

몇 끼를 먹으면서도 집에서들 보다 모두가 식사량도 많을 뿐더러 맛이 있다고들 칭찬이 자자하다

여행을 준비한 나와 또한 같이 하는 가이드가 고마운 인사라며 감사하단 말을 연발한다. 

1. 마각묘(마카오 이름의 유래)

중식을 마치고 일행과 관광지로 가는 버스에 탑승 가이드의 마카오라 이름 지어진 유래에 대한 얘긴

즉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절인 마각묘라는 절로 60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1554-1557년

사이 포루투갈인들이 마카오에 정착할 즈음 유럽인들이 이 지역의 사원이 모시고 있는 아마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마가오' 또는 '아마베이'로 바꾸어 불렀으며 선원들의 수호신 '아마'를 모신 묘로

마카오의 지명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3월 23일 여신의 축일 행사가 열린단다.

버스에서 내려 관음당 들어가는 마당에서 

2. 관음당

꼬로넬 메스퀴따 거리에 자리하며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중국식 불교사원이며 원나라 때

창건. 1844년 미중 우호통상조약이 조인된 곳이란다. 마카오 최대의 관음불을 모시고 있고 본당의

벽면에는 중국 18현인의 상이 나란히 서있고, 이 중 수염이 긴 사람은 '동방견문록'을 써서 동양을

유럽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라는 설이 있단다.

천정을 꽉 메우고 달린 나선형 대형 향들 

그 향들이 타는 냄새로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 였으며, 타는 연기로 인하여 실내가 안개낀 것처럼

온통 뿌였고 

그 연기로 천정이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다. 

2. 성바울성당

버스에서 내려 성당으로 가는 길 바닥을 돌로 포장을 했다 이유인즉 포르투칼인들이 정착할 때

이곳을 드나드는 배들이 빈 배로 오다 풍랑을 만나면 가벼움에 침몰할 수 있기 때문에 중심을 잡기

위하여 돌을 가득 실고 와 거리마다 깔아 두고 그 배가 돌아 갈 때는 중국의 많은 유물들을 한 배

가득 실고 돌아 갔단다.

이 성당은 1602년에서 1637년 사이에 이태리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종교박해 때

나가사키에서 도망 온 일본인 기독교 장인들의 도움으로 건설되었다고 함.

1835년 성바울성당의 부엌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건물의 정면과 계단, 벽의 일부만 남긴 채 모두

소실되었으며, 벽의 일부도 나중에 철거되어 지금은 성당정면과 계단만 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의 흔적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함.

성단의 뒷면과 계단 

 

세나도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동상과 그 사이에 보이는 성당 정면 

 

세나도 광장 분수대 앞에서 위의 나 그리고 아내

 

3. 마카오 타워

다시 우리는 마카오 전망대로 이동 우리나라 현대건설에서 설계하고 건축한 마카오 타워에 올라

시가지 전경을 둘러 보고 마카오 속의 한국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우기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둘러 보기로 하였으나 날이 벌써 어둑어둑하여 가이드의 설명으로

참배를 대신하였다. 얘기인즉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의 동상은 까몽에스 공원에 서 있고,

18세기 중엽 그가 마카오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서품을 받은 것을 기념해 세워진 동상이며,

마카오는 동양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선교 중심지 였으며, 성 안드레아로 알려진 김대건 신부도

1845년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기전에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했으며 그 동상은 1985년 10월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건립한 것으로 설명이 한글로 새겨져 있단다.

4. 카지노(casino) 

도박이 공인된 곳. 카지노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집'을 뜻하는 카사(casa)에서 유래되었으며 본디

르네상스시대 귀족이 소유한 사교·오락시설을 갖춘 공공집회소를 가리켰다.

40개 국에 이르며, 카지노의 수도 수백군데가 넘는다. 특히 1861년 개설된 모나코공화국의 몬테카를로,

1931년 공인된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나 이곳도 그에 버금 간다는

가이드의 말씀, 적잖은 여행 경비도 보충할 겸 ㅎㅎ 우리는 '金沙(Sands)'라는 마카오에서 제일 큰

오락실로 들어 갔다. 내부를 구경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만큼 매우 크다. 대부분이 털리고

나온다는 데 일행 중 3명이 대박을 터뜨려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 수 있었다.

숙소인 금룡주점에 도착 일부는 마카오에서 뜨거운 밤을 보낼 요량으로 라이브쇼 공연을 보러가고

나머지는 조금전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백화점 슈퍼에서 갖가지 과일과 카스랑 버드와이저 맥주로

여독을 풀며 마카오에서의 하루가 깊어만 간다.

호텔 맞은편 건너 이름 모르는 공원에 조성된 唐城 

 

*마카오 반환협정:중국과 포르투갈이 1987년 3월 마카오를 99년 12월 20일 중국에 반환할 것에 합의한

협정. 이는 74년 포르투갈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해외 식민지 청산을 선언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마카오는 99년 12월 중국의 주권아래 들어갔으며 50년 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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