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도착으로 빠뜨린 다산유물전시관 등을 둘러보기
위해 친구가 정성껏 차리고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고
작별을 고한 뒤 전시관으로 타박타박 걸음을 옮긴다
녀석은 어제 많이 먹은 탓인지 라면 몇 젖가락으로 대신하고

서두르거나 급할 것도 없고 그렇게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정약용선생의 유물전시관 전경

전시관을 나오려니 게속해서 비가 뿌린다
녀석은 우의를 챙겨 입고 나도 우산을 끄집어 낸다
정문을 나서려는 데 친구가 뒤따라 차를 몰고오다 만나 기념 사진을 찍고 거듭
하직인사를 고한다

국도를 포기하고 해안길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며 어촌의 삶과 이야기들의 풍경이
녹아있는 고향의 추억이 되살아 날 것같은 바닷길을 택한다
내 어릴적의 그리운 길들을 떠올리며---
할머니 손잡고 장에 따라 가던 길,
이웃집 할아버지가 삽을 들고 물꼬 보러 다니던 길,
어머니와 외갓집 다녀오던 길,
키가 작아 꼬마란 별명을 갖고 중학교로 오가던 진~길

정상을 향해 오르고 다시 내려가는 산길이 아니라 옆 자리를 채워 주는 동반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걸어가는 여로.
까맣게 멀어서 끝이 없어 보이는 海路

천천히 걸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내
주변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는 그런 나그네길이다.
걸으며 마을 이라고는 보질 못했는데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갯벌에서 뭔가를 캐고
있는 할배

민가도 가게도 없고, 차량이고 사람이고 다니질 않아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지도를 펴놓고 한참을 헤매기도 하고

이 큰 바다의 썰물 처럼 순간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공허하다
녀석은 아침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욕망을 끊고 수련을 쌓기 위하여 일부러 몸을 괴롭히는 수도승이나 하는 고행길이
또 시작된다

조금 챙겨온 물도 바닥이 나고 남은 건 라면 두 봉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 나그네 길인가
물동냥할 곳이 전무하다

궁금한 것을 물어 보려고 해도 거리가 멀고 들어 갔다 나오면 발 씻을 물이 보이지
않는다

견디다 못한 녀석이 말없이 라면봉지를 뜯더니 목마름은 차치하고 생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려고 하는 모양이다

사방팔방을 몇 번을 둘러 보고 또 봐도 갯벌과 바다와 섬들과 산과 들 뿐이다
하늘을 처다보니 짙은 구름이 깔려 있고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녀석에게
미안하고
대견스럽다
오로지 앞을 향하여 걷는 일 뿐이구나 먹거리를 찻아서

사방을 돌고 있는데 마주하는 순간에 동반자가 shutter를 누른다

갈림길은 왜 이리도 많은지

사내호에 이르니 낚시꾼도 보이고 근처에 식당도 보인다
오후 5시가 지나서 연포탕으로 늦은 점심을 겸하여 맛있고 편안한 저녁을 떼운다

방조제 중간 지점에 닿으니 강진군을 벗어나고 해남군으로 들어감

사내호는 국토확장(823ha)과 수자원개발등의 목적으로
1989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긴 공기 후 조성된 방조제

긴 방조제를 지나면서

감싸 안을 즈음
긴 여정의 하루를 접으려 한다
종일 바닷길을 걸으며 같은 고통을 겪으면 서로를 의지하며 여기까지 와준 동반자가
고맙고
저녁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 내는 형상은 찰나에 사라지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로
다가서니 빛바랜 동심도 꿈틀거리고
어쩌면
우리가 보고 겪는 모든 것들은
이 구름들처럼 일순간 사라지는 것들이 아닐런지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많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례길의 하루를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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