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土巡禮●

8월 6일(화성 수원 그리고 화성행궁)

milbori1999 2009. 8. 6. 08:40

계속되는 찜질방 생활과 조리할 공간이 만만치 않아 여행경비 지출이 많다


지루한 순례의 일상을 잊고 오산시를 벗어난다

경기도 남서부에 있는 화성시에 진입하다.

脈의 여맥이 북부와 동부에 :239m·:292m·:236m·:215m

등 구릉성 산지를 일으키고,

남부와 서부는 저평한 평야지대를 이루어 수원·평택평야의 일부가 된다.

군자·남양·의 세 만을 끼고 있는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여 간척·염전조성·수산양식에

적합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분양만에는 남양만 방조제가 건설되어 거대한 담수호인 가 생겨났다.

이 만을 포함한 앞바다에는 2개의 유인도와 39개의 무인도가 있다.

드디어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수원 도착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 정치와 군사 및 사회문화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고.

또한 정조시대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위민과 개혁을 실천하고자한 역사적 공간이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 융릉)을

13차례 참배하였으며 이 기간 중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시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을 베풀었던 효의 상징적인 공간이며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성의 남쪽문인 팔달문 돌로 쌓은 무지개문 위에 목조의 2층 문루를 축조하였으며,

전면에는 반월형 옹성을 쌓았고,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고 공포는 다포식이다

성문의 옹성에는 '오성지'라는 시설을 만들어 적의 화공시 물을 이용해 끌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란다

화성행궁 광장의 모습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아래층엔 세 개의 판문이 달린 통행문이 있고,

위층엔 누마루가 있다.

처음에는 라 하였으나 1795년 정조의 명으로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란다. 



봉수당은 이라고도 한다. 화성 행궁의 殿 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1789년(정조 13) 8월 19일 상량하여 같은 해 9월 25일 완공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7년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라는 건물 이름은 '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혜경궁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으며, 뒤에 돈령부지사를 지낸

亨(1725~1799)이 편액을 썼다.

이곳에서 1795년(정조 19) 헌경왕후의 회갑연인 진찬례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외 경룡관, 장락당, 복내당, 득중정, 낙남헌, 노래당, 유여택 등을 찾아 본다

녀석은 지쳤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화성의 북쪽문으로 한국전쟁때 문루가 소실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복원되었고

남문인 팔달문과 규모와 형태가 거의 같다

장안문 근처 분식집을 찾아 국토순례중 처음으로 국수를 저녁으로 먹음 꿀맛이다

나는 물론이고 녀석도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오늘도 강행군이다.

8시경 안양도착 간식으로 빵 몇 조각을 먹고 덕유불한증막에서 하루 지내기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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