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紀行文◎

추사고택 갑사 부여 그리고 친구

milbori1999 2012. 2. 15. 16:44

충청남도 당진시 新平面 梅山里에 딸린 섬으로

깊숙이에 있으며 왼쪽 해안의 까지는 1㎞,

오른쪽의 평택시 포승읍 해안까지의 거리는 3.6km이다.

옛날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중 이 섬에 닿았다

한참 마실 물을 찾아 헤매던 끝에 샘 하나를 발견하고 그 물을 마셨는데 어찌나 맛이 좋던지 금세 기운을

차리고 과거길에 올라 장원 급제를 하였다 함.

선비가 이 섬에서 물을 마시고 장원 급제 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 바로 '행담도'란다

우리 부부는 어제 저녁 밤을 이곳에서 보냈다

선비가 마신 그 물을 마셔서 효험 때문인지는 모르나 단잠을 이루다

서해대교는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에 따라 1993년 11월 착공하여 2000년 11월 개통되었으며,

도로는 6차선(31.4m)이고, 총 연장은 7310m로, 대한민국에서 총 연장은 세 번째로, 교량의 길이만으로는

두 번째로 긴 다리가 이 섬을 관통하게 되고,

 

이 도로는 서해안시대 국가 물동량의 수송을 원활하게 해주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교량 건설시 신공법 채택에 따른 전문기술 축적으로, 교량 기술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함

아침밥을 먹고난 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으로 달린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을 드나드는 솟을대문이다.

원래는 99칸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면적 265㎡ 가량이며 안채와 사랑채·문간채·사당채가 있다.

 

방마다 선생의 세간과 유묵 등이 걸려 있고.

동쪽에 사랑채를, 서쪽에 안채를 배치하되 안채 대청의 방향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향이고

사랑채는 남향이다.

안채는 6칸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협문·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된 이른바 대갓집 형태이다.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후손이 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하였다 함.

 

 

 

 

 

 

 

 

 

고택의 오른쪽 담장에 달린 쪽문을 나서니 대대로 마셔온 石井이 있네 

 

 

 

 

 

 

 

 

 

 

 

화순옹주는 1725년(영조 1) 2월 18일에 和順翁主로 봉해졌다.
1732년(영조 8)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에게 下嫁하니,

김한신겸판서(兼判書) 김흥경(金興慶)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이다.

1750년(영조 26) 남편인 김흥경이 죽자 곡기를 끊고 결국에는 죽고 만다.

정조 대에 이르러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려서 열녀정문을 내렸다.

이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은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안을 들여다 보니 넓은 터에 주춧돌과 기단만 남아 있구나

 

 

멀리 백송이 가냘프게 보이고

밑부분에 두 가지가 고사를 했는지 찢어진 자리에 덧댐질을 해놓았다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한 수종이라는

백송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다음 구경거리 찾아 갑사로 달린다. 빵 빵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의 계룡산 갑사 일주문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가볍게 허리를 숙여

반배하고 앞선 아내의 뒤를 따른다

좌우의 오랜 나무 숲이 장관이다

 

계룡사·계룡갑사·岬寺·甲士寺라고도 하며,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

 

 

 

505년(무령왕 5) 千佛般을 중창하고 556년(위덕왕 3) 惠明이 천불전·보광명전·대광명전을 중건하였으며,

679년(문무왕 19) 義湘이 당우(堂宇) 1,000여 칸을 더 지어, 화엄도량(華嚴道場)으로 삼아

신라 화엄십찰(十刹)의 하나가 되었고,

옛 이름인 계룡갑사를 갑사로 개칭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54년(효종 5) 사정(思淨)·신휘(愼徽) 등이 크게 중창하였고,

 1875년(고종 12) 다시 중건하였단다.

法燈花 아내는 가는 절마다 기와 불사를 하신다

수많은 불상으로 법당 안이 가득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강당·大寂殿·천불전·응향각·진해당(振海堂)·적묵당(寂默堂)·팔상전·표충원·삼성각·종각 등이 있고,

또, 보물 제256호인 철당간 및 지주와 제257호인 부도(浮屠)가 있으며,

《석보상절(釋譜詳節)》의 목각판이 있고,

1584년(선조 17)에 만든 범종,

경종이 하사한 보련(寶輦), 10폭의 병풍,

1650년(효종 1)에 만든 16괘불이 있다

이 절과 동학사는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월로 522의 금강대학교 법당 신축공사 때 한 두번

들리기도 하였다

 

 

 

 

 

 

 

 

 

 

 

 

 

 

사천왕문을 뒤로하고 다음은 고대 해상강국으로 발전하던 백제의 땅 부여로 출발

'구드래'는 큰 나라라는 뜻으로 백제를 뜻한다나

세월은 흘리고 역사를 간직한 백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처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우리나라 국토의 젖줄인

4대강의 하나로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하여 지어진 의 하류 구간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 중 백마강의 범위는 부여군 규암면 천정대에서 시작되어 낙화암조룡대, 구드래나루터,

부산과 대재각, 수북정자온대, 맞바위, 세도면 반조원리()에 이르는 약 16㎞의 구간을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 일본서기에는 등으로 기록되어 있고,

백제의 도읍이 들어선 이후로 금강의 역할이 더욱 커졌는데,

특히 백마강은 일본, 신라, 당나라, 서역에 이르도록 문물교역의 큰 길목이 되었던 곳이라 함.

 

 

나루터에 유람선을 탈 관람객이 적어 걸으며 구경하기로 하다

부소산은 백제시대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전쟁시에는 최후의 성곽으로 이용된 곳이고

삼충사는 백제 삼충신 '성충, 흥수, 계백'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백제문화제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삼충제를 지내는 곳

충령사는 내에 있는 사우로 1956년 세워졌다.

부여지방의 호국 전몰 군경과 파월용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현충일에 추념행사를 하고 곳  

 

반월루에서 본 부여邑街地  

 

영일루는 고종 8년(1871)에 당시 홍산 군수였던 정몽화가 지은 조선시대의 관아문으로

1964년에 지금 있는 자리인 부소산성 안으로 옮겨 세운 뒤,

집홍정이라는 건물의 이름을 영일루라고 고쳐 불렀단다.

 

이제 고란사와 낙화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잡는다

땀이 비오듯 줄줄줄 흐른다

오늘은 내리든 비가 멈추고 햇볕이 강렬하여 아내는 양산 펼쳐 그늘을 만들고 자세를 취한다

 

  

백화정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되었은며

부여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육각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당시 궁녀 3천여 명이 이곳 절벽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고.
백화정은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가 세운 것이란다.

 

정자에 앉아 땀을 식히며 잠시나마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의 아름다운 숨결을 느껴본다.   

백화정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물은 굽이치며 유유히 흐르고  

고란사로 향하다 아쉬움에 뒤돌아 본다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진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 하고,

절 이름은 뒤편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서 따왔다 한다

 

 

 

흔적을 남기고파

아내에게도 사진 촬영을 권해 본다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都城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함.

화장실에서 손도 닦고 세수도 하면서 땀을 식히고

고란약수를 마시며 더위를 쫓아 본다

때마침 아래 고란사선착장에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이 나룻배가 들어온 모양이다

유람선을 이용하여 돌아가야 겠다

요 며칠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강물이 불어서 가이드에게 수심을 여쭈니 7M 정도란다

그런데 또 다시 하늘에 구름이 몰려온다

 

 

백마강 나룻배에서 낙화암을 바라보니 들은데로 절벽색깔이 붉다

당시 백제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음  

구드래나루터에 유람선이 도착할 즈음 계룡대에 근무하다 전역한 고등학교 친구가 행선지를 물는다

유람선 뱃전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

40여명의 승선객이 있을 때 움직인다는 황포돗대

 

친구 내외는 우리가 부여에 있을 때 이미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보다 늦어지는 우리 때문에

부인께서 먹거리 장만하여 집에서 준비를 하고,

어제처럼 오늘도 만찬을 즐겁고 맛있게 먹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친구와 나는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서로에게 술을 권한다.

친구와 오랜만에 재밌는 저녁 한때를 보내고 출발하려는 우리에게 자고가라며 야단법석이다

그런 친구에게 하직인사를 고하고 또다른 집터를 찾아 나선다

고마우이 친구 잘 살고, 늘 건강하게나 여름쯤에 한 번 만나면 어떻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