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庭生活⊙

산골집 꿈 이루려 도시에 사표 내다

milbori1999 2006. 12. 10. 02:13
▲ 전기도, 전화도 없는 ‘오지중의 오지’에 문인득(오른쪽)씨가 도시의 아파트 1평값도 안되는 1000만원으로 지어낸 굴피집. 문씨가 농사일을 도와주는 형 정신씨와 함께 겨울을 앞두고 장작을 패고 있다. 울진 = 김선규기자
‘한티골’이란 지명은 전국 각지에 있습니다. 크다는 뜻의 ‘한’(大)이라는 말에다가 고개를 뜻하는 ‘산 우뚝할’ 치(峙)자를 붙여서 ‘한치’라고 부르다가 ‘한티’가 돼버린 곳입니다. 한티골이란 높은 고개가 끼고 있는 골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성한 터’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한티골이란 이름은 서울 강남에도 있고, 대구 팔공산 인근에도 있고, 충북 보은의 산골마을에도 있습니다.

그중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의 한티골은 꼭꼭 숨어있어서인지, 더 신성한 곳처럼 느껴집니다. 울진의 왕피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 전기도 없고, 이웃도 없고, 대낮에도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이곳에서 멋진 집 한 채를 만났습니다. 나무껍질로 지붕을 잇고, 침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황토로 흙벽을 발라 지어내 자연의 경치와 썩 잘 어울리는 집입니다. 이 집은 문인득(48)씨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내와 두 자녀, 그리고 형님과 함께 손수 지어낸 것 입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출신인 문씨. 고시보다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 합격해 건설기계와 용접분야의 기술사 자격증을 2개나 갖고 있답니다. 웬만한 직장인들의 몇배의 월급을 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최고의 엔지니어’가 오랜 준비끝에 사표를 내고 ‘신성한 터’로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40대 중반. 한창 일할 나이에 말입니다. 그를 한티골로 이끌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안락한 직장생활에서도 사표를 만지작거리며 몇달동안 잠자리를 뒤척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을 비가 살짝 뿌리던 날, 한티골의 집 굴뚝에는 관솔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문씨는 한쪽으로 미뤄뒀던 장작을 꺼내서 패고, 아내는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를 내다봅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툇마루 밑에서 비를 피하며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고요한 가을의 한폭 수채화같은 풍경입니다. 문씨 부부는 오랜만에 산골의 집을 찾아온 길손에게 산에서 캔 송이를 넣은 된장찌개와 따스한 밥상을 차려 내놓고는 하나 둘씩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한번도 농사일을 해본 적 없던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던 그가 맨손으로 황토를 벽체에 이겨바르며 집을 짓고, 낫이며 호미를 들고 농사를 짓고 있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줬습니다. 전기도 없는 산골마을에서 촛불을 켜고 맞이하는 별이 쏟아지는 밤풍경의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치밀한 귀농준비에도 수없이 부닥쳤던 실패에 대해서는 한없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마주치는 실패를 하나씩 꾹꾹 눌러 딛으면서 문씨 부부는 ‘한티’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티는 문씨의 멋진 집이 깃들어 있는 뒷산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넘고 있는 ‘높은 고개’이기도 하지요. 진짜 농군이 되기 위해, 시골마을에서의 ‘참살이’를 위해, 문씨 부부는 지금 ‘큰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울진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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