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土巡禮●

셋째날

milbori1999 2009. 8. 17. 20:26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그네 길을 떠났다

아직은 매일 반복되고 비슷비슷한 일이 되풀이 되는 것같고 실감이 나질 않는다.

지금까지 수차 다녀서 낯 익은 곳이라 그런면이 없지 않겠으나---

 

떠나는 건 물론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고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살기 위함이리라

 

어제 저녁 소나기와 피곤함에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일까?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밖을 나와 방파제로 향한다. 하늘은 맑고 촘촘한 별들이 또렷또렷한데

거거일의 파도소리와는 판이하다.

정겹고 포근함은 오간데 없고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고요하고 적막한

새벽에 혼자 거니는 날 몹시 두렵고 공포에 질리게 한다.

자연의 힘 앞에 내가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지 느끼게 하는 새벽녘이다

 

자리로 돌아와 아침밥을 짓자니 할머니 뵙기가 면구스러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들녀석을 일찍 깨워 고맙다는 인사만 드리고 이른 출발을 하였다.

 

잊을지 몰라 나서기 전에 횟집앞에서 재다짐 하며

일광해수욕장에 이를쯤 녀석은 발 뒤꿈치가 아파 신발을 교체하고

골반도 아프다고 얘기한다.

예상은 했지만 걱정이 앞서고 겁이 덜컥난다. 아직은 초반인데

대신 놈에 비해 난 별 탈이 없다.

단지 모처럼 얼굴을 내비친 이글거리는 태양이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하고

아스팔트의 열기로 발바닥이 후끈거린다

교리삼거리를 지나기 전에 늦은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기장실내체육관 정원에서 준비한 야채와 과일로 주린 배를 달래고

해운대로 향한다

다행히 녀석은 신발을 바꾸더니  발은 크게 불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달맞이 길로 접어들 무렵 녀석이 배가 많이 고픈지 뭘 좀 먹자고 한다.

편의점 찾기가 힘들었다.

돈을 절약하는 것이 기본이다 보니 사먹는 먹을거리가 주로 라면이다.

하지만 곁들인 맥두 한 잔이 몸을 가뿐하게 해주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이런 여행

배낭 짊어지고 쉼 쉼 즐기는 멋진 나그네 길---

이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기 충분하다

편의점 주인의 안내로 차도를 포기하고 와우산 등산로인 샛길로 빠저 느릿느릿 걷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걸으니 잊었던 오감과 자유를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길이고,

중턱에 앉아 내려다 보는 바다의 풍경은 그저그만이며

좁고 꼬불꼬불하며 호젓한 숲을 걸으니 발도 훨씬 편하다


오르막길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불계지주처럼 걷다보니 길을 잘못들었는지

와우산 정상의 해월정이 나온다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을 한가지 터득한 것 같다

해운대로 내려오는 달맞이 길 중턱에서

해운대해수욕장 초입 미포에서 멋진 동반자

그동안 수차 찾았지만 이곳이 미포란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이곳 해운대에는 내 이종이 살고 있어 영양보충도 하고 눅눅한 옷가지들을 깨끗이

세탁도 할 요량으로 연락을 했더니 집으로 오란다

그래서 셋째날은 맛있는 돼지고기에 배부른 저녁을 먹고 편안한 잠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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