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紀行文◎

거문도애서 낙안읍성으로

milbori1999 2012. 3. 9. 18:02

오늘은 2박 3일 일정을 마무리 할 새벽

잠자리에서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고 사방이 캄캄하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조금 지났다

어제 저녁 푸른식당 사장님께 고도의 볼거리를 여쭙고 뭍으로 가기전 찾아 보기로 하여 방을 나선다

마을과 항구를 오가며 산책을 하다 갓밝이가 시작할 무렵 영국군묘지로 향한다

거문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을 지나고

꽤 웅장해 보이면서도 아담하고 정감있는 돌담길도 지나며

뒤돌아 보니 서도의 가로등 2개가 아직 어둠에 깔린 서도의 길거리를 밝히는 모양이다

서서히 백도쪽에서 태양이 솟아 오르는 기미가 보인다.

영국군묘는 1889년까지 9기의 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두기만이 남아 있다.

이곳에 영국군이 주둔하게 된 것은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이 무단으로 강점한 것이었다.

당시 거문도에 주둔한 영국군은 비교적 호의적이었으며 주민들과도 잘 지냈다고 전해진다.

묘지 주변에 조성된 공원 벤치에 앉아 잠간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날이 밝았다

산을 내려와 길없는 바닷가를 걸으며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니

그 맛이 낚시질하며 대양을 바라보던 때와 사뭇 다르다

바다의 풍경은 좀 삭막하고 차가운 느낌도 들지만

해수면을 따라 건너오는 바람은 아침이지만 눅눅하다

특유의 바다 바람이기 때문이리라

멀리 수월산 가는 목넘어와 선바위가 보인다

거문도항은 1923년 어항의 역할을 시작으로 1966년 거문도항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으며,

그리고 1970년 7월 28일 연안항으로 지정되었고,

1952~1984년 사이에 물양장, 방파제, 호안 등이 축조되었다 하고,

1997년 5월 20일~1997년 12월 26일 사이에 북방파제 및 물양장 축조의 실시 설계와

1998년 8월 11일~2000년 10월 17일 사이에 북방파제를 140m 축조하였으며,

또 2006년 3월 3일~2006년 10월 28일에는 물양장 축조공사를 실시 설계하였다 함.

멀리 백도가 보인다

바닷가 막다른 곳에서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다

뒤돌아 보니 고도항과 고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아치형 교량 삼호교가 아름답다.

고도의 이름 모를 산에 오르니 이름없는 정자도 있고

고도에서 서북단 긴 방파제와 주변에 양식장

동백나무 군락지도 만나고

산비탈에 조성한 테니스장 자주 이용하는지 주변이 깨끗하다

이제 거문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가고호 외에도 여객선이 또 있다

무사히 여수항에 도착하다

여수 오죽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다

2년전 이곳에 친구 둘과 저녁을 먹었는데

분위기와 맛이 괜찮아 이곳으로 안내를 하였지만

그때와 사뭇다르다 맛도 별로인 것같다

오찬과 만찬의 차이?

주방에서의 손맛?

아님 나의 입맛?

식사 내내 궁금증만 더해가고 다른 곳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한 오찬을 마치고

우리가 첫날 묵은 곳 낙안읍성을 향해 출발할 시간이다

낙안읍성은 다섯번 정도 찾은 곳으로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안아 분지를 만드는 자리에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역사 드라마의 촬영장을 찾은 것은 아닌지 잠시 착각하지만 이곳은 분명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이다.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한다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낙안읍성민속마을은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을이다.

조선 중기 만들어진 석성 내부로 행정구역상 세 개의 마을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마한시대부터 이곳은 삶의 터전이었다.

토성으로 담장을 둘렀던 마을은 조선 중기 북벌운동으로 유명한 임경업이 군수로 부임하여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 하나 보이지 않는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인위적으로 옛 모습을 갖춘 민속촌이나 명망 있는 양반들의 기와 가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지만 초가집 노란 지붕으로 마을을 이룬 일반 백성들 삶의 터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유일하다고 한다.

동, 서, 남 세 곳으로 자리하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마을은 물레방아가 마을 공동의 물길을 따라 움직이고 장독보다 더 낮은 돌담만이 남방식 초가집 사이로 경계를 짓고 있다.

길쌈하는 집을 찾은 친구가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민속장터와 기념품점, 짚풀 공예와 길쌈, 대장간 등 옛 모습을 추억하는 체험코스 등이

찾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동헌, 객사 등 성 안의 옛 행정기관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초가집들은 남방 특유의 툇마루가 발달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민속학 자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읍성의 모습을 갖춘 임경업 장군을 추모하는 비석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자리하며.

400년 이상의 세월이 깃든 마을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 한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옛 모습 그대로 가치를 보존하는 장소로 자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낙안은 농사고장으로서 문루마다 일년의 사계절과 농사와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남쪽의 성문으로 쌍청루 또는 진남루라 일컬으며 여름을 상징하며

여름을 건강하고 시원스레 보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물레방앗간을 지나고

소담한 연못을 지나니

둘담위 박 넝쿨이 싱그럽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박이 달리고 뻗어나는 줄기따라 새하얀 꽃이 또 피어나고---

 

골목길 접어드니 수령이 꽤 오래된 듯한 은행나무가 시야를 압도한다

낙풍루는 성곽 동쪽에 위치한 문루로서 1834년(순조 4) 성균관진사 김호연이 사비 1400량을 들여

중건하였고.

오랜세월이 흐르면서 일제 식민통치하에 관리 소홀로 퇴락하여 없어졌으며

낙안읍성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1987년에 복원되었다 함.

동문인 낙풍루는 사계절 중 봄을 상징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위도 피하고 갈증을 해소하려고 주막에 들려 파전과 동동주로 목을 축이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는 해단식을 겸한다

님들 내년을 기약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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